[사이다썰]고아라서 공부 못한다고?보여줄께 폭풍역관광!

고아 글을 읽고 저한테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나눠보려 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 역시
고아였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하셨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제가 10살 때쯤

저를 버리고 사라지셨죠. 그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갑자기
부동산에 들려 집을 내놓았고
제가 집에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들락 들락거렸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그 사람들에게 정말 좋다는 등
집을 빨리 팔려고 하셨던 게 제 기억에
너무나 선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몰랐죠. 집을 팔고
도망가실 거라는 사실을, 그렇게 집이 팔리자
어머니는 저와 함께 고깃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곤 계산을 한 뒤
시장에 다녀올 테니 여기 있어봐 하고
떠난 어머니,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10살의 나이,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가
걱정되어 경찰서에 가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으셨고


전 경찰서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전화번호도 바뀐 상태였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던 저는 결국
혼자 사는 경찰 아저씨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찾을 동안
경찰 아저씨 집에서 잠을 청했죠. 그 기간 동안
전 매일 어머니를  찾아다녔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가던 마트 자주 가던 미용실까지 하지만 볼 수 없었고
​전 매일 밤 절망했습니다. 솔직히
저를 버린 게 아니라 다쳐서 뭔가 사정이 있어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몇 달이 지나자 전 깨달았습니다.
저를 버렸다는 것을, 그렇게 전
경찰 아저씨의 도움으로 고아원
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고아원에 도착했을 때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전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무섭구나, 이 사람들도 똑같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아원에서 몇 달을 지냈는데
친구 한 명 없이 밥을 먹고 방 안에서 계속 누워있었습니다.

걱정이 된 고아원 봉사자 누나는
매일 제게 와서 말을 걸었지만
사람이 무서웠고 정을 주면 또
도망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지나고
봉사자가 바뀌어 어떤 형이 왔습니다.

대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형은 오자마자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와는 그럴 수 없었죠. 제가 말도
안 하고 계속 혼자 있으니 형은 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어떡할까? 고백할까?
라는 등, 오늘 고백했다! 근데 차였어.. 나 좀 위로해주면 안 되냐?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깐 나도 모르게 그 형을
기다렸습니다. 그 형과 함께 있는 게 재미있었고, 매일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처음
사람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형한테
처음 말을 건 낸 말은 고마워 형이었습니다.
형은 혼자서 말하다가 갑자기 내가 고맙다고 말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XX가 말을 했다!
라며 온 동네에 소문내고 다녔죠.

그 이후 저는 말도 잘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정말 신기한 게 고아원 애들 중 착하지 않은
친구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잘 만나는데,
싸우면 사과하고 트러블이 있으면 화해하죠.
하여간 그렇게 그 형 덕분에 저는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나갔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고아원 친구들과는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등하교를 같이 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이 죽은 아이,
그리고 나처럼 버리고 간 아이, 저보다 더 심한 친구들도 많았기에 제가 혼자서
상처받은 척을 할 수 없었죠. 그 아이들도 충분히 힘들 테니까.
그렇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전 그 아이들과 함께 근처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매일 같이 잠을 자고 같이 있다 보니, 속마음도 나누는 그런 친구들이 되었고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참 많이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오는 그 형은 올 때마다 맛있는 걸 사 오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고 왔죠.
하지만 우리가 중학교에 졸업하던 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며
작별을 했습니다. 그 형한테 모두 편지와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물건을 줬던
기억이 나네요. 하여간 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는데,
고등학교에서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근처에 고등학교가 한 곳밖에
없었기에 또 모두가 그 학교에 진학했는데,
거기에 참 이상한 놈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상처가 있었는지, 아님 그냥 고아를
싫어하는지, 우리는 고아라는 걸 숨기지 않고
그냥 편하게 밝히고 다니는데
그게 짜증 났나 봅니다.
한 번은 우리 고아원 친구를 때려서
병원에 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유를 물어
보니 그냥 고아라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할 정도로
사이코 기질이 있는 놈이었습니다.
하지만 덩치도 크고 공부도 잘했기에 쉽게 건들 순 없었죠. 이후


그놈은 고아에 대한 편견? 같은 것들을 반 친구들에게 말하기 시작했고
그게 지속되자, 고아라는 게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우리들끼리 다니면 그만이지만
고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힘들었습니다.
근데 이놈들이 고아는 유전적으로 약하고 멍청해서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다는 둥 개소리를 했는데,
그 말에 화가 나 대드니깐, 그러면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저한테
물었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깐 정말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공부도 그렇게 잘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체육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우연의 일치인진 모르겠지만
고아 애들 전부 그랬습니다. 학원을 안 다녀서 그런가
아님 신체적으로 정말 약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죠.
비웃는 그놈들에게 전 뭐라 대답하지도 못하고
쪽팔리게 깨졌습니다. 그 이후로 집에 가면서 정말로 우린
유전적으로 약한가? 부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시거나
그리고 버릴 만큼 정신적으로 좋지 않거나, 그래서 그런 건가,



우린 고민에 빠졌죠. 그렇게 고아원 원장님께 제가 질문했습니다.
우린 유전적으로 이상한 거냐고 그랬더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하냐며 그건 멍청한 놈이 하는 소리라고 다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찝찝한 건 정말 우리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죠.
그 순간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난 비록 부모님이 우릴
버렸지만 부모님 욕먹는 건 싫어.라고..
모두 이 말에 동감했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잠도 안 자고 회의 한 결과 모두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그놈들한테 보여주자,라는 결론을 맺었죠. 하지만 공부 못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공부를 한다고 공부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친구,
 공부하다 지치는 친구들 그리고 그냥 놀자는 친구들, 하지만
그때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너네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토록
그런 말 들으면서 살 거라고 포기하지 말자고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도서관에 혼자 가서 공부하는 방법, 효율적인 공부 방법
책이란 책은 죄다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들 중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그냥 열심히 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길은 하나다.
그래서 친구들을 부추기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고아원에 돌아와
매일 공부를 했고 TV 보는 시간 노는 시간 다 줄이고 공부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친구들과 토의하면서 공부했고
외울 것이 있으면 모두가 외우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첫 시험을 쳤고 결과는 참담했죠.
저는 성적이 조금 올랐는데,  다른 친구들은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그놈은 학원을 다녀서 그런지 공부를 엄청 잘했고 비웃으면서
역시 고아들은 안 된다고 비아냥거렸죠.



전 그 말에 더 열이 받아서 잠자는 시간 가지 줄이면서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엄청 잘하면 그 방법으로
다른 친구들을 가르쳐주기 위해 하고 또 했죠. 문제집 한 권을 10번씩 풀었습니다. 그리고
지문이란 지문은 다 외워버렸고, 영어 구문이란 구문은 싹 다
해석하고 머리에 집어넣습니다.

그렇게 학교 시험이 아닌 모의고사 날 시험을 쳤는데
언어 2수리 3외 2탐 1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 점수를 보니
언어 1수리 1외 1탐 2더라고요.
제가 비빌 정도가 아니었죠.

그 이후로 전 더 열심히 했어요.
부족한 수리 문제를 더 풀고 언어는 지문을 더 외웠죠.
그렇게 하다 보니 길이 보이더라고요. 아 이렇게 공부하면
되겠다는 그 이후 다음 모의고사 때 장난 안 치고 언어 1수리 1외 1탐 1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눈뜨면 공부만 생각하고 공부만 했거든요. 다들 놀라고 선생님도 놀라고 고아원 친구들도
다 놀랐습니다. 하지만 제 목표는 이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올라왔으니 모든 고아원 아이들의 점수를 높이는 거였는데
그 이후 친구들을 나름 채찍질? 하면서 제가 그간 쌓은 노하우들을 다 풀고
그리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곤 계속 공부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죠.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2학년 말이 되자, 전교 석차 상위는 거의 저희들이 다 차지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그놈들이 저희를 무시할 수조차 없었죠. 게다가 가장
놀리던 그놈은 저한테 밀려나고
제가 가서 한마디 했죠.

너 학원 두 개 다니지? 매일 엄청난 선생님들이 너를 위해 강의하시는데
어쩌냐 혼자서 공부한 내가 너보다 잘하네?
고아는  유전자가 안 좋다니 그딴 개소리하더니, 너는 딱
그 정도밖에 안되는 유전자냐?풋
라고 한마디 한 후 무시했습니다.
원래 무시했지만 더 철저하게 무시했죠. 그 이후로 공부에 재미를
붙인 고아원 친구들은 고3까지 미친 듯이 공부했고
돈이 없어 원래 대학에 못 가는 상황이었는데
다들 하향지원으로 2년 장학금, 4년 장학금 등으로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놈도 물론 좋은 대학에 들어갔긴 했지만
30살이 된 지금 친구들 중3 명은 공무원이고 1명은 경찰, 다른 한 명은
변호사 준비 중입니다. 게다가 공무원 중 6급이 2명, 7급 이 1명입니다.

또 한 명은 선생님이고 다른 한 명은 현재 건축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죠.
저는 회사에 취직해 현재 그 누구보다
많은 연봉을 박고 있습니다.

그놈은 안타깝게도 아직 백수입니다.
제가 웃겨서 잘 지내냐? 하고 페북 메시지를 보냈는데 씹더라군요.ㅋㅋ

이것이야말로 인간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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